지난 1월14일 광주서구 치평동 김 대중 컨벤션센타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었습니다.
독도 관련하여 김 대중 씨를 비판하는 말을 외치고 있는데 4~5명의 60대 남자들이 내 뒤 의자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나 들으라는 듯 이야기 합니다.

"아! 죽고 없는 사람을 왜 저리 욕하는걸까이!"
"그 시절에 그런 협정 안하면 어떻게 IMF 넘길 수 있었겠어? 따지고 보면 김 대중 씨가 있었으니까 그나마 했지 (독도협정 그렇게 해주고 일본으로부터 돈 받아 IMF 넘기는 것을)영삼이는 하도 못했잖아?"

"물에 빠진 놈 건져논께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더니.. 젠장! 그렇게 해서 IMF 위기 넘겼은께 기초생활수급자들 그렇게라도 살고 있제! 나라위기 넘기고 어렵게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들 생계유지 할 수 있도록 법 만들고 그러면 됐제 뭘 더바래?"

"아! 그랬건 어쨌건 나라가 망하면 그깟 독도가 뭔 소용있어? 우선 나라가 안 망하게 조치를 해야하니까 김 대중 씨나 되니까 그렇게 해서 일본으로부터 돈 받아서(?) 나라 살려놨으니... 솔직히 나라살려논 사람이 애국자 아니여?"

그들은 내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마다 내 뒤에서 약 30여분 위의 말들을 나 들으라고 말하다 갔습니다.
영토가 없다면 국가는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영토는 목숨걸고 지켜야 할 것인데 이런다고 내주고 저런다고 내주면 남아날 영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영토를 지키지 못한 자는 필히 단죄해야 국가가 존립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으로서 영토를 수호하지 못한 김 대중 씨를 그렇게까지 두둔하는 것을 듣고 내 뇌가 아득한 가운데 '실록 친일파'(임 종국 지음, 돌베개 간,) 라는 책에서 본 이 용구라는 매국노와 그의 아들이 한 행위가 떠올랐습니다.

【이 용구(李 容九, 1868~1912)는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북진수송대를 조직하여 일본에 적극 협력하였고, 국민에게 친일사상을 고취하며 고종황제와, 총리대신 이 완용, 일본의 조선통감 등에게 '한일합방 건의서'를 올리는 등 적극적인 친일행동을 한 자입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은사금 10만원을 받았으며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마에서 요양생활하다 사망한 뒤 일본으로부터 훈(勳) 1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은 매국노입니다.

이 석규(李 錫奎)는 이 용구의 둘 째 아들입니다.
이 석규는 그의 아버지 이 용구가 창시한 시천교를 태평양 전쟁에 협력한다는 강령을 내세워 대동일진회로 재발족시키고 실권을 장악한 다음, 친일행각을 자행한 자입니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하였음) 

이 석규는 그의 아버지 이 용구를 다음과 같이 미화하였다고 '실록 친일파'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 용구는·····일본을 신뢰하고, 일본에 협력하고, 동양의 평화와 번영에 전 생애를 건 끝에, 그 일본에 배반을 당해서 비분과 실의 속에····스마에서 객사한 한국의 지사(志士)이다.

보호조약은 당시의 한국민에게 '무군(無君)·무국(無國)·노예화'의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그 보호조약을 곧바로 노예화(식민지화)의 사실로 보고 이에 대한 철저한 저항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그 보호조약을 전제로 해서, 장래의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한국의 완전한 병합·병탄을 예견하고, 그 시한 안에서의, 장래의 노예화 회피를 위한 일한합체(日韓合體) 운동이다. 필자로서는 전자의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 항일 의병운동이요, 후자의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 이 용구의 합방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상 임 종국 지음, 돌베개 간, '실록 친일파' 336~337쪽의 이 석규의 주장내용)

'독도 팔아 나라경제 살렸으니 애국자다' 라고 말하는 사람과, '조선민중의 노예화를 회피하기 위한 일한합체(日韓合體) 운동 역시 애국적 행위이다' 라고 말하여 그의 아버지의 매국행위를 미화한 매국노 이 석규가 뭐 틀린거 있습니까?
12.01.14.김대중센타 (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