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 고 삼때, 강릉 문화원에서 인권영화제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그날 모란 공원 추모제를 갔다가 전교조 선생님들과 문화원으로 갔었는데, 자리에 앉자 어두운 영화관에서 누군가가 나를 아는 채 했다. 내 옆으로 살짝 다가 와 속삭이는 소리.
"아빠, 나야........"
아! 그녀는 나의 첫째 딸, 주희. 그녀가 거기에 있다니. 다른 아이들 대학 들어갈려고 기를 쓰는 와중에 내 딸 주희는 영화에 빠져 있었다. 나중에 뒷풀이에서 영화제를 주최한 강릉 시네마 테크 관계자에 의하면, 강릉에서 유일한 여고생 관람자였고, 유일하게 처음 부터 끝까지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었다는 것.
딸 아이 고 이때, 강릉 단오 문화관에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첫째 딸 주희와 관람을 했다. 딸 아이와 영화를 같이 본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영화를 보면서 옆 자리 딸아이를 살짝 훔처 보았다. 영화를 보는 영롱한 눈빛. 그녀에게서 그런 눈빛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부터 딸아이는 강릉 시네마 테크 회원이 되었다.
이번, 딸아이는 영화과에 지원을 하였고, 세 군데 대학에 합격을 했다.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대학가지 말고 집에서 놀라고 했더니, 딸 아이는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불현듯 영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고, 홀로 서울로 올라가 신림동 친구 원룸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공부 하다가 덜컥 합격해 버린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교 공부와 무관했던 아이. 내신과 수능을 전혀 무시를 했고 그래서 대학에 그렇게 쉽게 들어 갈 줄 몰랐다. 그런데, 영화과는 실기(글쓰기) 비중이 높았다는데, 아마 내가 유일하게 딸 아이에게 강제로 시킨 글쓰기가 주효 했나 보다.
나는 딸 아이에게 일 주일 마다 글쓰기를 강제했다. 제목과 분량을 정해주고 무턱대고 쓰라고 했다. 형식과 문법과 맞춤법을 무시하고 무조건 쓰라고 했다. 나는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를 불신했다. 그래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심지어 가기 싫으면 집에서 놀라고도 했다.
워낭 소리가 몹시도 보고 싶다. 내일 딸 아이와 세 번 째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성숙한 처녀와 영화를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린다. 그리고 화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이기 까지 하다. 이번에 나는 자리에서 그녀의 손을 살짝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살짝 속삭일 것이다.
"재미었어?"
강릉 자비원에서 오늘 부터 십 여일간 워낭소리를 상영한다. 소도시 강릉에서 이렇게나마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더구나 정동진 심곡 오지에서.
나는, 벌써 부터 워낭소리가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꿈꾸는 사회주의. 에코아나키즘. 생태사회주의. 인간만의 평등이 아닌. 만물의 평등. 그것이 진정 아니키스트가 꿈꾸는 세상이다.
나는, 딸아이들 키워놓고 자동차를 버릴 것이다. 이곳 심곡 오지가 아무리 불편해도 그것을 감수할 것이다. 대신 당나귀 한쌍을 살 것이다. 여기는 풀 밭이 많아 그들의 먹이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나는 당나귀에 내가 탈 수 있는 일인용 수레를 만들어 이곳 해안도로를 유유자적 타고 다닐 것이다. 언덕을 오를 때는, 그들이 힘이 드니까 옆에서 같이 걸어 갈 것이다. 내 방 앞에 그들의 작은 집을 지어 주고 신선한 풀들을 매일 같이 뜯어 줄 것이고, 겨울에는 그 신선한 풀들을 말려서 실컷 먹게 해 줄것이다.
나는 오늘 오후에 볼, 워낭소리의 소와 몇 년 후 내가 타고 다닐 당나귀 때문에, 새벽 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다.

